본문

보도자료

국악방송의 최신 보도자료를 제공해드립니다.

국악방송, 7월 '이달의 국악인 : 별, 기록으로 만나다' 김천흥 명인 선정

  • 작성자 국악방송
  • 작성일 2026.08.06
  • 조회수 21

국악방송, 7'이달의 국악인 : , 기록으로 만나다' 김천흥 명인 선정

인남순·양경숙 명인이 전하는 귀한 기억과 기록

 

[보도자료 사진] (왼쪽부터) 인남순, 김천흥, 양경숙.png

 

(왼쪽부터) 인남순, 김천흥, 양경숙

 

국악방송(사장 직무대행 김은하)은 국악의 날(65)을 기념하는 연중 특별기획 이달의 국악인 : , 기록으로 만나다의 의 7월 주인공으로, 춤과 음악의 명인 김천흥 명인(1909~2007)을 선정했다.

 

본명은 김천흥, 호는 심소(心素). 192214세의 나이로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에 입소했으며, 이듬해 순종황제의 50세 생신 연회에서 춤을 춰 '조선의 마지막 무동'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가 1932년 아악수장이 되었다.

 

광복 후 1951년 국립국악원 개창과 함께 원로사범으로 활동한 김천흥은 1955년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전통무용 전승에 힘썼다. 1958년에는 무용극 '처용랑'을 안무하여 전통예술의 재창조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1971년 처용무 국가무형유산(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39)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종묘제례악 국가무형유산 제1호의 명예보유자로도 활동했다.

 

1987년부터 무형문화재예술단 단장, 대악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799세를 일기로 입적하기까지 국립국악원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했다.

 

이번 방송에는 김천흥의 제자로 국가무형유산 처용무 전승교육사인 인남순 명인과, 해금 전공하며 스승에게 음악인의 자세를 배운 양경숙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출연해 김천흥 명인의 삶과 예술혼을 생생하게 전한다.

 

인남순 명인은 "1979년 국립국악원을 그만두고 연구소를 차려서 처음으로 정재무도홀기에 있는 항장무극을 복원하게 됐다", "그때 제 나이 스물다섯밖에 되지 않아 아는 것이 많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곁에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양경숙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1980년대 초부터 대학에서 창작 음악을 가르치면서 해금연구회를 만들었는데 선생님이 굉장히 큰 관심을 가지고 격려도 해주시고 사비까지 보태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달의 국악인 : , 기록으로 만나다는 국악방송 FM(수도권 99.1MHz 등 전국 방송)에서 매일 오전 848, 저녁 724분 두 차례 방송되며, '덩더쿵 플레이어' 모바일 앱을 통해서도 실시간 청취할 수 있다.

 

공공누리 출처표시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